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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 제작

한글 최초의 힌팅 폰트, 맑은고딕을 말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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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팅의 종류

힌팅에는 기계적인 계산을 통한 오토힌팅 및 수작업을 통한 매뉴얼 힌팅의 2가지가 있습니다.

오토힌팅

폰트 제작 프로그램에서 미리 정해놓은 알고리즘 및 문자세트에 맞는 힌팅 기법을 이용해 자동으로 힌팅명령을 추가하는 작업입니다. 시간이 적게 걸리는 장점이 있지만, 품질이 대체로 만족스럽지는 못한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오토힌팅은 글자가 '모든 글자가 모든 크기에서 전반적으로(general) 품질이 좋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매뉴얼 힌팅

작업자가 명령어를 직접 선택, 입력하여 일일이 적용하는 방식의 힌팅작업을 뜻합니다. 고품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는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완성형 아웃라인 한 글자를 힌팅할 때 적게는 30분, 많게는 2-3시간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재는 현재는 오토힌팅 처리 후,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매뉴얼 힌팅의 목적은 '특정 글자를 특정 크기에(specific / detailed) 대해 품질이 좋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맑은 고딕 힌팅 작업 개요

초창기 맑은 고딕 힌팅에 대한 일정을 세울 때는 매뉴얼 힌팅으로 1일 기준 평균 8자(1인)를 작업하는 것으로 통계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작업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으로 판단, 모노타입(Monotype)이라는 회사에서 1차로 오토힌팅을 한 상태에서 2차로 매뉴얼 힌팅을 추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모노타입은 현재 Fonts.com이라는 사이트와 안드로이드의 폰트 다운로드 서비스인 플립폰트(flipfont)를 개발, 운영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힌팅 디자이너는 4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하였으며, 기술 부분은 제가 담당하였고 디자인 검수는 당시 디자인 부서의 이경배 팀장(현, (주)좋은글씨 대표)가 담당하였습니다. MS 측에서는 힌팅 디자이너 4인이 작업하는 부분에 대해 결과물의 이질화를 이슈로 삼았지만, 디자인 검수쪽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 또한 원래는 맑은 고딕 Regular에 2인, Bold에 2인이 투입되는 것으로 하였지만, 힌팅 디자이너들의 경험이 없다는 점과 한글 최초의 힌팅이다 보니 작업이 지체될 것으로 판단해 Regular만 국내에서 작업하고 Bold는 모노타입에서 Regular 결과물을 보고 따라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시 아시아권 폰트를 제작하는 시점에서는 폰트 디자인만 각 국가의 폰트 회사들에 맡기고 힌팅은 모노타입에서 작업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 MS의 담당자와 논의한 끝에 한글만은 직접 힌팅처리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힌팅 작업까지 같이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산돌의 석금호 대표님 및 이경배 당시 디자인 팀장님이 한글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갖고 MS의 담당자를 설득하였기에 가능하였습니다.

 

 

힌팅 프로세스 및 주의 사항

1. 프로세스

힌팅 폰트를 제작하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힌팅에 최적화된 아웃라인 폰트를 제작한다.

2. 출력 테스트 및 화면 테스트를 거치며 아웃라인을 수정한다.(반복 과정)

3. 폰트에 힌팅 정보를 세팅한다. (전역 정보)

4. 힌팅 작업을 진행한다.(오토힌팅 또는 1차 힌팅)

5. 화면 테스트를 거치며 힌팅을 수정한다.(반복 과정)

6. 최종 폰트를 생성한다.

 

hinting process
힌팅 프로세스

 

2. 주의 사항

디자인

힌팅을 위한 폰트를 제작한다면, 폰트를 힌팅에 적합하게 수정 또는 새롭게 디자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힌팅에 부적합한 폰트를 이용해 힌팅처리를 하면, 작업시간이 늘어나거나, 글자가 크기별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힌팅 후 폰트파일 용량이 지나치게 커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힌팅을 제대로 이해하고, 힌팅에 적합한 폰트를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힌팅 진행과정에서는, 힌팅 처리되는 결과가 원본 아웃라인과 지나치게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힌팅과정은 원본 아웃라인을 이용한 2차 디자인 과정으로 여겨지지만, 원본과의 디자인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술

힌팅에 있어서 기술적인 측면은 폰트파일의 크기와 힌팅 작업소요기간에 크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OS가 빨라지고 디바이스들이 발달해도, 폰트파일의 크기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최소의 명령어를 이용해 최대의 효과를 내는, 즉, 폰트파일의 크기가 작게 나오게 하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힌팅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저 같은 경우는 다양한 오토힌팅 프로그래밍을 통해 기존의 힌팅작업 시간을 1/2 ~ 1/3 수준으로 축소하였습니다.(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해 본 결과입니다.)

 

 

렌더링에 따른 힌팅의 분류

힌팅은 렌더링 방식에 따라 4가지로 나뉩니다. 일반적인 폰트엔진에서는 다음 4가지의 서로 다른 렌더링 방식을 지원하고 있으니, 결국 힌팅 방식도 렌더링 종류대로 나뉘는 것입니다. 4가지 렌더링 방식이란, 단색(Black & White), 앤티앨리어싱(Gray Scale), 클리어타입(ClearType), 다이렉트라이트(DirectWrite)가 적용된 방식들입니다.

black and white

<단색(Black & White) 힌팅>

 

픽셀 표현이 검은색으로만 처리되고, 픽셀의 계단현상이 뚜렷합니다.

 

 

gray scale

<앤티앨리어싱(Gray Scale) 힌팅>

픽셀 표현이 검은색과 농도가 다른 회색들로 처리되고, 계단현상이 일어나는 부분이 회색으로 표현되어 부드럽게 보입니다.

 

 

clearType

<클리어타입(ClearType) 힌팅>

 

가로방향에만 컬러로 앤티앨리어싱 처리된 개념이라 할 수 있어, 곡선부분은 계단현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directWrite

<다이렉트 라이트(ClearType + vertical Anti-Aliasing) 힌팅>

 

클리어타입에 세로방향의 컬러 앤티앨리어싱을 추가한 방식으로, 곡선부분까지 세밀하고 부드럽게 처리됩니다.

 

 

렌더링 방식이 다르면 화면의 래스터라이징 결과물 또한 달라지므로, 특정 렌더링 방식에 맞추어 작업한 힌팅 결과는 다른 렌더링 방식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어떤 렌더링 방식을 최종 렌더링 방식으로 타겟으로 삼을지 먼저 결정한 후에 힌팅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실제 맑은고딕은 다이렉트라이트(ClearType + vertical Anti-Aliasing)를 위한 힌팅이 적용되어진 상태이며, 힌팅이 되지 않았을 때와 힌팅 처리된 상태를 각각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획의 두께 부분이 일정한지, 글자의 뭉침은 없는지, 글자의 전반적인 색깔이 같은지 비교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non-hinted

<힌팅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

 

hinted

<힌팅 처리된 상태>

 

 

힌팅폰트의 전망

 

힌팅폰트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처음 맑은 고딕을 개발할 당시인 2003년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와 MS의 Windows의 점유율이 높았지만, 현재는 그 점유율이 많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힌팅이 가장 필요한 OS와 브라우저가 바로 Windows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이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맥 OS 및 안드로이드 OS 및 가장 점유율이 높은 크롬 브라우저는 앤티앨리어싱을 기본으로 사용하므로 힌팅의 중요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요즘은 폰트가 이슈화되는 분야는 웹폰트 분야와 모바일 디바이스 분야입니다. 그런데, 웹폰트 분야의 경우는 OTF를 활용한 WOFF가 대부분이고, 모바일 디바이스 분야에서는 앤티앨리어싱이 기본인데다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높아져 힌팅의 필요성이 많이 줄고 있습니다.

 

해외의 폰트 디자이너 게시판에서도 다음과 같은 질문글과 답변글을 보았습니다.

"폰트 디자이너가 힌팅을 새롭게 배워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힌팅의 종말을 예언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필요합니다.""폰트를 만들면서 거의 20년동안 힌팅을 했는데, 동료와 지금껏 나눈 얘기가 이제 힌팅은 필요없을거라는 얘기였지요. 아직도 가치는 있습니다."

 

저 또한 답변글과 같은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새롭게 힌팅을 배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힌팅이 지금 당장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입니다. 웹폰트에서도 여전히 힌팅에 대한 이슈가 있고, 모니터 해상도 아직도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Windows라는 OS가 여전히 점유율이 높은 현 시점에서는 힌팅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OEM으로 폰트를 제작하는 회사들의 경우 종종 힌팅 처리된 폰트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비고 : 맑은 고딕 Semi Light 힌팅 작업에서 달라진 점

MS에서 Windows 10 출시를 계획하면서 2년전 맑은 고딕 Semi-Light을 제작하였는데, 기존 맑은 고딕 Regular와 비슷한 방식으로 매뉴얼 힌팅처리하였습니다. 모노타입에서 1차로 오토힌팅을 하고, 2차로 제가 오토힌팅 결과물을 수정하고, 3차로 디자이너가 매뉴얼힌팅을 적용하였습니다. 제가 맡은 부분은 모노타입에서 적용한 오토힌팅 명령 중 한글 구조와 맞지 않거나 힌팅 명령이 많아지게 하는 것들을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맑은 고딕 Regular 당시의 힌팅과 다른 점이 생겼습니다. 바로, 기존 맑은 고딕 Regular의 경우는 8pt부터 32pt의 크기까지 중간에 빠지는 크기 없이 힌팅작업을 하였다면, 이번에는 기존의 2/3 정도의 크기들만 힌팅 작업하였습니다. 모니터의 해상도가 높아지게 되고, Windows 자체의 폰트 렌더링 방식에 있어서 다이렉트 라이트 또한 어느정도 활성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라 추측됩니다. 실제, 힌팅 명령에도 다이렉트 라이트를 고려한 명령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한글 최초의 힌팅 폰트인 맑은 고딕 제작 과정의 후기(?)에 해당하는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